소비자의 작은 목소리

공정위 행정예고 표시광고 심사지침

봄날 순동이 2025. 6. 29. 06:11

소비자안전' 더이상 은폐·축소·누락 안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행정 예고한 기만적인 표시·광고 심사지침 개정은 소비자 안전의 관점에서 고무적인 진전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동안 기업들이 제품을 판매할 때 소비자에게 중요한 안전정보를 작게, 짧게, 어렵게 감추거나 누락해온 관행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소비자 안전정보 은폐 행위의 명문화

개정의 핵심은 소비자의 구매 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소비자 안전 관련 중요 정보의 은폐·누락·축소 행위를 명시적으로 기만적 표시·광고로 규정했다는 점이다.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제3조·시행령 제3조)에 근거한 이 지침은 제품이나 서비스에 관한 광고에서 소비자의 안전과 직결된 정보를 감추거나 왜곡하는 행위를 부당한 표시·광고 행위로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용어 정의도 구체적이다. 누락은 정보를 아예 밝히지 않거나 빠뜨리는 것이고, 은폐는 지나치게 작은 글씨나 짧은 시간 노출로 정보를 알아보기 어렵게 만드는 방식이다. 축소는 설명을 의도적으로 간략화해 소비자가 오인하게 만드는 행위다.

공정위가 안전 관련 정보의 왜곡 방식을 구체화함으로써 그동안 회색지대로 남아 있던 기업의 표기전략에 대해 제도적 기준을 마련한 것은 소비자 보호의 관점에서 환영할 일이다.

전문용어라는 새로운 은폐 수단

그러나 개정안에 아쉬운 점이 있다. 바로 전문용어나 외래어 표기에 대한 규정의 부재다. 실제로 많은 제품들이 유해성분 없음 또는 무첨가라는 문구 뒤에 의학적, 화학적 전문용어나 외국어 표현을 나열한다.

예를 들어 파라벤 무첨가라는 표기와 함께 뒤에는 메틸파라벤, 프로필파라벤 제외 등 일반 소비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정보가 병기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지침상 누락이나 은폐로 볼 수 없는 그레이존에 해당하며, 소비자들은 해당 정보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보지 않으면 안전성을 판단할 수 없다.

온라인 쇼핑과 해외 직구가 일상화된 지금, 이러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C커머스 플랫폼의 국내 월간 이용자는 이미 30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플랫폼에서 유통되는 상품의 표시·광고는 대부분 외래어 표현, 해석없는 외래어 표기, 이해 불가능한 약어 등이 난무하고 있다.

제품의 안전성과 직결되는 중요한 정보임에도 포장지나 상품 페이지에 작은 글씨로 흐리게, 혹은 아예 생소한 용어로 표기함으로써 소비자들은 알고 고르는 선택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과제

인터넷을 통한 비대면 구매에서 소비자는 실물 확인이 불가능한 만큼, 정보 접근성은 곧 안전성과 직결된다. 안전한 소비를 위한 판단 기준은 결국 알 수 있는 정보에서 시작돼야 한다.

기업들이 전문용어를 통해 소비자의 판단을 흐리는 표기 역시 실질적으로 기만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도록 후속 보완이 필요하다.

특히 모바일 환경에서의 정보 표시는 더욱 까다로운 문제다. 화면 크기의 제약으로 인해 중요한 안전정보가 축소되거나 생략되는 경우가 빈번하며, 소비자들은 복잡한 메뉴를 거쳐야만 해당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는 단순히 기업의 의도와 관계없이도 정보 접근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실효성 확보를 위한 과제

공정위의 이번 개정은 소비자 안전 정보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며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보여주기만이 아니라 이해시키기가 함께 가지 않으면 실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명확한 다음 단계를 고민할 때다.

전문용어에 대한 해석 의무, 표기 가독성에 대한 최소 기준, 온라인 광고 정보 접근성에 대한 가이드라인 마련 등 디지털시대의 소비환경에 부합하는 안전정보 제공 기준이 더 보완돼야 한다. 특히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개인 맞춤형 광고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개별소비자의 이해 수준에 맞는 정보 제공 방식도 새롭게 고려해야 할 과제다.

또한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현실적 부담도 고려해야 한다. 대기업과 달리 전문 인력이나 시스템이 부족한 기업들이 새로운 기준을 준수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 방안과 단계적 적용 방식도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소비자 안전의 새로운 출발점

기만적인 표시·광고는 단지 법률위반이 아니라 소비자 생명과 안전의 위협이다. 공정위가 보여준 이번 변화 의지를 더 확장해, 단지 규정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들의 표시·광고 행위에 실질적인 변화를 유도하는 후속조치를 기대한다.

무엇보다 소비자교육과 정보 리터러시 향상도 병행돼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제도가 만들어져도 소비자 스스로가 정보를 해석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스스로의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이제는 알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할 차례다.